토성의 영향 아래
우울증 초기 상태의 벤야민에게는 고독이 유일하게 인간에 적합한 상태로 보였다. 거대 도시 내에서의 ‘고독’, 자유롭게 몽상하고 관찰하고 숙고하고 떠도는, 한가하게 산책하는 사람의 분주함을 말하는 것이다.
벤야민은 원래 “도시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지닌 사람이 길을 잃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한지 이야기한다.
벤야민은 형편없는 방향감각과 지도를 볼 줄 모르는 능력 덕에 여행을 사랑하게 되고 헤매는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다. 시간은 많은 여유를 주지 않는다. 시간은 뒤에서부터 우리를 뚫고 들어오고, 좁다란 통로를 통해 우리를 과거에서 미래로 밀어낸다. 그러나 공간은 넓으며, 가능성, 교차로, 통로, 우회로, U턴, 막다른 골목, 일방통행로 등이 가득하다. 토성적 기질은 느리고 우유부단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칼을 들고 자신의 길을 내며 나아가야 한다. 때로는 칼날을 스스로에게로 돌려 끝을 내기도 한다.
위장, 비밀스러움은 우울한 사람에게는 필수적인 것이다. 벤야민은 엠블렘을 모아 놓은 책을 수집하고, 에너그램을 만들기 좋아했고, 가명으로 장난을 쳤다. [아게실라우스 산탄데르]라는 글에서 벤야민은 비밀스러운 이름을 갖는 것의 환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제목은 벤야민이 소장하고 있었던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를 연상시키며, 숄렘이 지적하듯 ‘악마 천사 Der Angelus Santanas’ 의 애너그램이다.
우울증 기질은 내적 무력감을 외부로 투사하는 경향이 있으며, 실질적으로 느껴지는 거대한 불행을 영구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벤야민은 우울한 인간과 세상 사이의 심오한 상호작용은 언제나 (사람이 아니라) 사물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간파한다. 우울한 사람은 늘 죽음의 그림자에 쫓기고 있기에 세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가장 잘 아는 자가 된다. 혹은, 세계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울한 자의 관찰에 스스로를 내맡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물에 생명이 없으면 없을수록 그것을 숙고하는 정신은 더욱 강력하고 영민해진다.
초판본과 바로크 엠블렘 책뿐 아니라 벤야민은 아동 도서와 광인이 쓴 책도 전문적으로 모았다. 서재의 괴상한 배열은 벤야민의 글쓰기 전략과 비슷하다. 덧없고 악평을 받거나 버려진 것에서 의미의 보석을 찾아내는 초현실주의에 영감을 받은 눈이, 박식한 취향을 갖춘 전통적 정전에 대한 충성심과 나란히 작용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다 읽는 책은 읽기 싫어했다. 그는 공산주의자가 되는 걸 좋아했고 되고자 노력했지만 마르크스는 오래도록 읽지 않았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었던 사람, 15년동안 혁명적 공산주의에 공감했던 사람이지만 1930년대 후반까지는 마르크스를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 수잔 손택이 벤야민의 토성적 기질에 대해 쓴 글 (제멋대로 편집) 발췌.